[안경애 칼럼] `별`을 쏘아 올린 그들

입력 2015-11-01 18:50

1992년 영국 남동부 길퍼드에 위치한 서리대학교. 많은 연구실 중 유독 한 곳만 매일 새벽까지 불이 켜진 채 10명 남짓한 젊은이들이 무언가 작업에 열중하고 있었다. 현지 연구자들이 귀가하고 난 후인 저녁 시간부터 동이 터오는 새벽까지 이 연구실은 오롯이 한국어와 한국 가요가 흘러나오는 이상한 공간이었다.
'일당백' 정신으로 '한국 최초 인공위성 개발'에 도전한 11명의 KAIST 연구원들이 매일 밤 그 공간의 주인공이었다. 서리대학으로부터 인공위성 제작기술을 전수받아 위성을 공동 개발했지만 이들은 거기서 만족하지 않았다. 인공위성 기술 100%를 우리 것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의지로 나사 하나 닦고 돌리는 것조차 꼼꼼히 눈과 머리에 담았다. 영국 연구자들이 썰물처럼 빠져나간 밤 시간은 20대 초중반의 이들이 온갖 자료와 논문, 장비들을 직접 읽어보고 만져보며 내 것으로 만드는 시간이었다.

인공위성을 만드는 것은 맨손으로 부품 하나하나를 닦고 조이고 기름치는 열악한 가내수공업 같은 일이었다. 직접 납땜을 하고 건전지를 해체해 배터리팩을 만들고 우주환경에서 견딜 수 있게 코팅을 해야 했다.

이렇게 완성한 '우리별1호'는 1992년 8월 10일 저녁 남미 기아나의 우주기지에서 성공적으로 쏘아 올려졌다. 한국인 최초로 우주공간에 위성을 올려놓은 역사적인 사건이었다. 국가 우주개발 계획조차 없던 시절, 시대를 앞서간 이들의 이야기다.

11명 중 하나였던 박성동 쎄트렉아이 대표는 스승인 고 최순달 박사가 깨우쳐준 '헌신(Devotion)'이란 단어를 가슴에 품고 그 시절을 보냈다고 말한다.

'인공위성의 아버지'로 불리는 최순달 박사는 우리별 프로젝트를 만들고 '우주개발'의 밑그림을 그린 선구자였다. 최 박사는 '시장에서 채소나 생선 파는 할머니의 전대에서 나온 세금 덕분에 너희들이 좋은 환경에서 돈 안 들이고 공부할 수 있다'며 KAIST 학생들에게 국가와 사회에 헌신할 것을 가르쳤다.

청운의 꿈을 품고 영국행에 나섰던 11인의 삶은 이후 어떻게 펼쳐졌을까.

그들은 KAIST 인공위성연구센터로 돌아와 우리별 2호, 3호까지 성공시켰다. 인공위성 개발 초보국가가 3번 연이어 성공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먼 이국의 연구실에서 매일 밤을 지샌 열정과 헌신 덕분에 가능했을 것이다.

그러나 젊은 그들에게 주어진 것은 영광보다는 혹독한 현실이었다.

우리별 개발을 가능케 한 정부 연구지원 사업인 '선도연구센터(ERC)' 9년 지원이 끝난 1999년. 함께 출발한 다른 센터들은 논문 수, 전문인력 배출 등에서 좋은 평가를 받아 후속 지원을 받았지만 인공위성연구센터만 학술지에 발표한 논문 수와 길러낸 전문인력 수가 적다는 이유로 최하점을 받아 후속지원 대상에서 제외됐다.

20대를 우주개발에 헌신한 젊은 연구자들의 신분은 6개월마다 재계약해야 하는 계약직 연구원이었고, 신용카드 한 장 만들 수 없었다.

그들은 기업으로, 대학으로, 해외로 흩어졌다. 20여 년이 지난 현재 국내외 우주개발 기관과 기업, 대학에서 우주와 연을 맺고 살아가고 있다.

센터 출신이 창업한 기업만 10곳에 이른다. 센터 인원 거의 절반이 나와 만든 쎄트렉아이는 인공위성을 수출하는 국내 대표 우주기업이 됐다. 그들이 만든 우리별 위성은 정부가 선정한 광복 70년 70대 기술에 선정됐다.

별을 쏘아 올린 젊은 그들의 이야기는 많은 생각 거리를 던진다. 우리는 헌신하는 마음과 사명감을 갖고 각자의 자리에서 제 역할을 하고 있는지, 정부 R&D 시스템이 열정적인 젊은 과학기술자들을 '효율화'와 '생산성'이란 일률적 잣대로 재단하고 있지 않은지, R&D 평가라는 이유로 연구자들의 열정을 잘라내고 있지 않은지 말이다.

껍데기가 아닌 알맹이에 집중하고, 또 그 알맹이를 제대로 평가해주는 사회를 만드는 게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 모두에게 주어진 숙제다.

안경애 생활과학부장 nature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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